붉은 파종(Crimson Genesis)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
생명이 깃든 자리에는 언제나 환희와 고통이 뒤섞인 근원적 에너지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새미는 이 경계의 처절하고도 신비로운 역사를 〈Crimson Genesis – 붉은 파종〉이라는 이름으로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의 향연을 넘어, 작가가 약 20년간 천착해온 삶의 근원적 질문과 마주한 치열한 사유의 흔적이자 응축된 고백이다.
그는 “우리는 새빨갛게 태어났다”고 말한다.
초기작 〈경계〉(2007)와 〈사춘기〉(2010)는 얼굴 없는 인물과 붉은 웃음을 통해 성장 과정에서 마주하는 존재의 불안과 정체성의 균열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위태로운 내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응시한다.
이후 그의 회화는 ‘사막’이라는 상징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사막은 죽음과 황폐의 자리이자, 동시에 태고의 기억과 생명의 맥박이 잠재된 공간이다. 작가는 그 사막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 파장을 통해 인간 실존의 운명과 경계를 기록해왔다.
그의 작업 세계는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 생명의 서사로 요약된다.
초기의 그림이 내면의 어둠을 응시했다면,
이제 그의 회화는 생명의 빛과 감정의 파동으로 진동한다.
점차 탄생과 재생, 그리고 존재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색채의 진동, 특히 ‘붉음’의 반복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작가의 존재론적 언어로 자리한다.
 
최근작 〈물결로부터〉(2024–2025) 연작에서는 죽음의 대지가 오아시스로 변모하며, 심연의 물결이 보랏빛과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그 빛의 파동은 마치 생의 리듬처럼 화면 위를 일렁인다.
작가의 회화는 보이지 않는 내면을 색과 파동으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11살 때부터 시작된 그의 그림 여정은 내면의 고투(苦鬪)와도 같았다.
때로는 1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완결’을 미루며 캔버스와 묵묵한 대화를 이어가야 했다. 이러한 완결에 대한 강박은 그림을 애증의 대상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예술가로서 가장 진실한 동력이 되었다.
그는 그림이 “오염도가 가장 낮은” 자신의 언어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치열한 과정 속에서 그는 고통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세상을 향한 자신만의 시선을 단단히 세워간다.
그의 20년에 걸친 회화적 여정은 불안과 죽음의 응시에서 출발해, 치유와 환희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고독한 투쟁은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에세이 《여름 – 티파사로의 귀환》에서 고백한 깨달음과도 닮아 있다.
“겨울의 깊은 곳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저항할 수 없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Albert Camus, In the depth of winter, I finally learned that within me there lay an invincible summer.
세상의 부조리와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에는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그 깨달음처럼, 오새미는 고통스러운 창작의 시간을 통해 〈Crimson Genesis〉라는 강력한 기원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는 2006년의 얼굴과 2025년의 얼굴을 마주 세우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생의 기원을 ‘붉은 파종’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먼 훗날, 두 손을 맞잡고 달려가 만날 다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글. 함윤희(마리나갤러리)
선택 _ 2007 _ Acrylic on canvas _ 80.3x116.8 cm
경계 _ 2007_ acrylic on canvas _ 162.0x112.1cm
물결로부터Ⅰ _ 2024 _ acrylic on canvas _ 90.9x72.7cm
물결로부터Ⅲ _ 2024 _ acrylic on canvas _ 53.3x45.5cm
굴절 _ 2024 _ acrylic on canvas _ 27.3x22.0cm
물결로부터Ⅳ _ 2025 _ acrylic on canvas _ 33.4x24.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