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행복, 바니바글스 Bunny Buggles, New Joy
상수동의 오래된 골목 안, 계단을 오르내리며 쌓여온 시간 속에서 신주욱은 16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그림과 함께 살아왔다. 패션 일러스트를 공부하며 유성 마카로 선을 긋던 초창기, 그는 버려진 가구를 자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며 ‘업사이클’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무렵 이미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생의 미학을 실천했다. 홍대 프리마켓에서 고양이 그림을 팔며 관객을 처음 만났던 그날 이후, 그의 세계는 거리에서 갤러리로, 삶의 현장을 지나 신앙의 깊은 층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대학 시절 교리교사로서의 경험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이라는 신부님의 조언은 작가에게 예술의 윤리적 방향을 심어주었고, 그 신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졌다.
2014년 세월호의 비극은 그의 내면에 큰 균열을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는 곧 ‘그림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확신으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의 모여 있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고, 함께 끌어올리는 손길을 그리며 그는 공동체의 힘을 시각화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그림은 세월호 가족협의회의 상징으로 남았고, 그 여정 속에서 받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경험은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 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의 도시와 해변, 산 정상에서 시민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런던·파리·뉴욕 등 다른 나라의 공동체와 워크숍을 이어가며 ‘기억을 잇는 예술’의 의미를 확장했다. 거리와 광장, 학교와 성당, 사찰 그리고 낯선 도시의 작은 갤러리까지—그가 작업을 펼친 장소는 언제나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자리였다. 이러한 ‘현장에서의 예술’은 그에게 연대의 감각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그는 수많은 공공 프로젝트와 시민 참여형 작업을 통해 예술의 공공성을 굳건히 해왔다. 서울 신시청사 12개 층을 채운 대형 벽화부터,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젝트, 지역의 오래된 돌담을 밝히는 작업까지, 이 모든 활동은 “예술을 통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예술은 특별한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스칠 수 있는 삶의 표면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확신이 그의 창작의 뿌리가 되었다.
그의 대표적 모티프인 ‘토끼’는 이러한 공동체의 정신을 상징한다. 수년 전부터 그려온 수천 마리의 Bunny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그가 만났던 ‘우리’의 얼굴들이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강진의 돌담마을에서, 런던의 작업실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과 온기가 토끼의 형상에 스며들었다. 그에게 바니는 사람들이 나누는 온기와 마음, 그리고 작은 행복까지 담아내는 얼굴 같은 존재다.
현재 그는 인간의 내면과 관계, 그리고 시스템 속의 사람들을 동물의 형상과 색으로 빚어내고 있다. 이는 현실의 공격적 언어를 넘어서는 또 다른 방식의 표현이며, “사람을 계속 그려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이 그의 작업을 지탱한다. 각각의 토끼는 분열과 상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이자,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우리’의 은유다. 그것은 그가 오래 고민해온 질문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지켜낼까?”에 대한 시각적 응답이다.
결국 그의 작업은 서로의 온기를 모아 세상을 밝혀가는 마음의 형상이다.
그림 속 토끼들은 말없이 고개를 맞대며 묻는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빛이 아니냐고.”
글. 함윤희(마리나갤러리)
토마토마 바글스_2025_acrylic on wood_지름 60cm
오즈를 찾는 바니바글스 Bunnybuggles Finding Oz _ 2025 _ acrylic on canvas _ 50x40cm
푸른 산 너머의 희망 바니바글스 Bunny buggles, Hope Beyond Blue _ 2025 _acrylic on wood_31x31cm
새해의 기쁨, 바니바글스_ 2025_acrylin on wood _100x10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