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유리의 공생, 그 치열한 경계에서 피어난 빛
경계의 색채
Color in the Boundary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그의 저서 《색채론》에서 “색채는 빛의 고통이자 기쁨”이라 정의하며, 색이란 빛과 어둠이 만나는 경계에서 탄생하는 역동적인 현상이라 보았다. 이러한 괴테의 통찰은 뜨거운 가마의 언어로 번역되어 화면 위에 펼쳐진다. 빛은 대지의 침묵을 깨우고, 흙은 그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40여 년간 흙을 다루어 온 숙련된 감각 위에 지난 20여 년간 유리라는 물성을 더해, 상반된 두 존재를 하나의 온도 속에서 응결시키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견고한 도판 위에 스테인드글라스의 명징한 빛을 얹어, 우리 삶의 이면에 흐르는 찰나의 숨결을 드러낸다.
가마의 열기를 견디며 흘러내린 유리는 강렬한 색채로 표면에 고인다. 식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세한 빙열(crackle)은 불이 머물다 간 흔적이자, 찰나의 시간이 각인된 시간의 무늬다. 깨어난 빛은 무심하게 그어진 선들과 교차하며 환희와 긴장이 공존하는 감각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 빛을 묵묵히 떠받치는 것은 시간이 퇴적된 흙의 지층이다. 거친 표면 위에 새겨진 격자와 선은 삶의 질서와 구조를 암시하며, 불투명과 투명, 거침과 매끄러움이 하나의 온도 속에서 공존한다. 이처럼 흙과 유리, 불의 시간이 만들어낸 표면은 완결된 결과라기보다 과정이 남긴 흔적에 가깝다.
이질적인 두 물성이 하나의 온도 속에서 서로를 투영하는 공생의 미학을 전한다. 흙과 유리의 경계에서 피어난 이 빛의 궤적들이 우리의 분절된 시간 사이를 메우는 깊은 ‘성찰의 여백’으로 닿기를 소망한다.
글. 함윤희(마리나갤러리)
작가명: 김한사(Hansa Kim)
전시제목: 경계의 색채(Color in the Boundary)
전시기간: 2026. 3. 18. -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