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을 걷다(Into the Paintings)’
우리는 때때로, 한 점의 그림 속을 천천히 걷고 싶은 순간을 만난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은 ‘그곳’이 있다.
기억 저편에 머물러 있던 풍경,
스쳐갔지만 오래도록 남은 빛과 색.
김이슬에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따라 걷는 사유(思惟)의 시간이다.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과 이야기, 공간을 감싸는 공기와 빛을 수집한다.
그렇게 모인 감각의 단면들이 화폭 위에 차곡차곡 쌓이며,
그의 그림은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감정이자, 존재의 재구성이 된다.
프랑스 문학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라고 했다.
그 표현처럼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만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때 오래된 도시는 다시 태어나고,
우리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시간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걸어온 여정 속에서 머물렀던 장소들,
그곳에서 수집한 시간과 감정을 한국화의 언어로 재구성한 풍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점과 선, 색과 여백이 켜켜이 쌓이며
장면은 기억의 표면에서 감정의 층위로 전환된다.
그림 속 풍경은 한 시점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선 관람자는 또 다른 여행자가 되어
다시 걷고, 멈추고, 머무는 시간을 살아간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 풍경을 함께 걷는 것이며,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림 속을 걷다’는 작가의 기억 위에 또 다른 기억이 포개지는 여정이자,
하나의 풍경이 다채로운 삶을 품는 여행이다.
이번 전시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유럽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주변 풍경,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작품 28점이 선보인다.
그 중 12점은 2026년 분도출판사 달력에 수록된 원화로, 전시에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글. 함윤희
포르투갈 롱루이스 다리 - 석양 _ 2025 _ 한지에 분채 _ 45.5x53cm
작가명: 김이슬(Dew Kim)
전시제목: 그림 속을 걷다(Into the Paintings)
전시기간: 2025.9.11. - 10.4.